서울대기독교수협의회와 서울대기독교총동문회가 생각하는 종교의 원활한 활동을 위해서는 혐오 표현과 타인에 대한 강요가 반드시 필요하다. 나로서는 이들의 홍보자보에 나온 단어를 빌려 "진실"과 "진리"에 따라 "공동체 건설"에 주력하고자 하는 양식 있는 현대의 기독교 단체가 왜 혐오 표현과 타인에 대한 강요를 자신들의 핵심적인 활동으로 간주하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자신들이 혐오와 강요에 의존해서밖에 존속할 수 없는 단체라고 생각한다면, 자신들의 혐오와 강요를 인정해달라고 억지를 부리는 대신 단체의 방향에 문제가 있다고 반성하고 고치는 게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태도 아닌가?
우리 아이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어서, 아이에게 성정체성에 대해 물어보았다. 아이는 자기를 여자라고 생각하며 몸도 바꾸고 싶다고 해서 트랜스젠더 여성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날부터 우리 가족은 아이의 호칭을 '딸', '언니'로 바꾸었다. 아직 수술도, 호적 정정도 하진 않았지만 가족이 자신의 정체성을 '여자'로 인정해주니 큰딸도 의상이나 화장 등의 젠더 표현을 더 자유롭게 하고 있다. 딸과 함께 식당을 가거나 쇼핑을 하면 힐끔거리며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직접 물어보는 사람도 있다. 잠깐의 동행에도 내가 느낀 시선의 불편함을 아이는 매일 느낄 텐데, 하루하루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들까도 싶다.
생각해보면 가장 오래 알았던 사람들에게 제일 늦게 말했다. 그동안 알리지 않은 게 오래된 거짓말처럼 느껴져서인지도 모른다. 몇 년 전에야 10대 시절부터 만난 친구들에게 알렸다. 친구들은, 돌이켜보니 오래전부터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았는데 먼저 다가가주지 못했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가족에게 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 직접 말하지도 못했다. 힘든 시간이 흘렀다. 처음 동반자와 같이 제주에 갔을 때는 부모님과 공항에서 짧은 인사를 나눴다.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모진 말들, 폭력과 인권침해는 그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자기 일처럼 다가온다. 성소수자와 함께 있다는 이유로, 성소수자 인권을 옹호한다는 이유로 폭력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차별을 받기도 한다. 이런 차별을 연계차별이라고도 한다. 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과 폭력을 당하는 자는 그 핍박이 얼마나 부당한지 점차 알아간다. 그래서 성소수자들이 혐오를 넘어 거리에 나서듯, 성소수자의 가족과 친구들도 자신에게 덧씌워진 낙인과 혐오를 넘어서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
우리사회에서 '합법적인'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대표적인 형태로 서류상 동성인 부부가 있다. 법적으로 부부로 인정받든 인정받지 못하든 서로 사랑하며 사는 모습은 비슷하다면, 왜 지금처럼 동거하며 함께 사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굳이 '결혼'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는 것일까? 게다가 법적으로 결혼을 할 수 있는 '이성커플'들도 결혼을 하지 않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추세인데 말이다. 일단,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것과 할 수 없어서 하지 못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누군가는 당연히 누리는 권리들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것을 우리는 차별과 억압이라고 부른다.
나는 모든 트랜스들이 성기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느낄 필요가 없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그 어떤 수술도 마찬가지다. 자기 자신 혹은 자기 몸에 대해 이게 맞다는 느낌을 갖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는 사람에 따라 다 다르다. 내게 있어서는 성기 수술이 그 중 하나였고, 이걸 공개하는 이유는 성기 수술을 받을 수 있었고, 받기로 결정한 한 트랜스의 삶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려주고 싶어서다.
2015년 6월 26일은 누군가에게는 '노예해방'만큼 중요하고 역사적인 날입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대법관 9명 중 5명의 찬성으로 동성결혼(Same-Sex Marriage)이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렸고, 그 결과 미국 전역에서 동성결혼이 법적으로 허용되었습니다. 미국 대법원의 '동성결혼 합헌' 판정 이후에도 일상 곳곳에 스며든 차별적 제도가 시정되고, 사람들의 인식과 태도가 바뀌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성소수자들이 상처를 입고 또 견디며 살아가겠지요. 하지만 동성애를 질병으로 취급하던 시대를 지나 동성결혼 합헌 판정에 이르기까지 40여 년간의 싸움 덕분에, 다음 세대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 없이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한국의 성소수자들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