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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마음먹은 건 다 해요” : ‘안나’를 둘러싼 편집권 침해 논란 속 쿠팡플레이의 빗나간 욕망 (ft.엉뚱한 해명)

창작자 향한 쿠팡플레이의 안하무인 태도.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드라마 '안나' @쿠팡플레이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드라마 '안나' @쿠팡플레이

“그 결과 시청자들의 큰 호평을 받는 작품이 제작되었습니다.”

지난 3일, 스트리밍 플랫폼 쿠팡플레이 쪽이 발표한 입장문 중 일부다. 앞서 드라마 <안나>(2022)의 이주영 감독은, 보도자료를 통해 쿠팡플레이 쪽이 감독과 스태프들 동의 없이 8부작인 작품을 무단으로 6부작으로 편집했고, 그 때문에 등장인물의 심리상태가 지나치게 평면적으로 묘사되면서 작품의 내러티브가 크게 훼손되었다며 공개 사과와 감독판 릴리스(배포·개봉)를 요구했다.

이주영 감독은 ‘이럴 거면 크레디트에서 내 이름을 빼 달라’고 요구했으나 이조차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밝히며 힘주어 강조했다. “자본을 투자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그 모든 과정을 무시하고 일방적, 독단적으로 자르고 붙여 상품 내놓듯이 하는 것은 창작에 관여한 사람들의 인격을 부정하는, 창작의 세계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작품은 물건이 아니다.”

 

창작자 향한 안하무인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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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플레이 쪽의 입장문은, 쿠팡에서 나온 보도자료가 늘 그렇듯 억울함으로 가득 차 있다. 하루 만에 나온 입장문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우리는 감독과 제작사와 함께 합의한 원안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으나 그걸 바꾼 건 감독이었고, 그래서 수정 요청을 수차례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작품을 지키기 위해 우리의 권리를 행사해 편집에 개입했을 뿐이다. 그래서 시청자들도 크게 호평하지 않았나. 감독의 편집 방향성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감독판은 앞서 밝힌 대로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가 끝나는 대로 릴리스 하겠다.”

자신들은 잘못이 없으나 감독이 생각하는 비전이 있다고 하니 감독판은 릴리스 해주겠다는 말에서는 ‘우리가 얼마나 밀어줬는데 어떻게 우리한테 이래?’라는 뉘앙스까지 읽힌다.

물론 쿠팡플레이 쪽의 입장문은 나오자마자 바로 반박되었다. 이주영 감독은 쿠팡플레이 쪽 입장이 나온 당일 곧바로 “감독의 편집본”은 쿠팡플레이 쪽이 적극적으로 지지했다는 “승인을 받은 시나리오 최종고와 동일하였”으며, 쿠팡플레이 쪽이 “편집에 관한 의견을 전달한 건 4월21일 편집본 회의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고 반박했다.

다음날인 8월4일에는 이의태/정희성(촬영), 이재욱(조명), 박범준(그립), 김정훈(편집), 박주강(사운드) 등 <안나>의 핵심 스태프 6인이 이주영 감독의 문제제기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과실 인정과 사과, 재발방지 약속을 요구했다.

“저희는 쿠팡플레이로부터 전혀 존중받지 못했습니다. 저희가 피땀 흘려 완성해낸 결과는 쿠팡플레이에 의해 일방적으로 변경되었습니다. 감독도 동의하지 않았고 저희 중 누구도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알 수조차 없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24시간도 채 가지 못해 바로 반박당할 이야기를 늘어놓은 건 그다지 놀랍지 않다. 모기업인 쿠팡이 지금껏 보여줬던 행보가 그렇지 않은가. 2015년 쿠팡은 자사의 직원이 과도한 야근 탓에 과로사했다는 ‘찌라시’를 돌린 경쟁사 직원들을 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 당시 김범석 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오랫동안 앓고 있던 지병이 사망 원인이며, 과로로 인한 사망이라는 소문은 악성 루머였음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바로 1년 뒤, 법원은 경쟁사 직원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고인은 평소 오전 7시에 출근해 자정에 퇴근하는 등 업무량이 많았고, 사고 당일에도 오후 7시께 집으로 돌아와 다시 회사로 출근하려다 돌연사했다”며 과로사를 주장하는 경쟁사 직원들의 글 중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한다”고 판결한 것이다.(“자꾸 거짓말하는 쿠팡, 왜 그러세요?” <시사오늘> 김인수 기자. 2016년 11월12일)

이뿐인가. 2020년 부천물류센터 코로나19 집단감염과 관련해, 쿠팡은 뜬금없이 방역지침이 문제가 아니라 인천 학원강사가 직업과 동선을 속였기 때문에 집단감염이 발생하도록 역학조사를 못 한 것일 뿐이라고 엉뚱한 핑계를 댔다. 그러나 이 또한 언론 보도를 통해 관리자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거나 턱에만 걸치는 ‘턱스크’ 상태였음이 밝혀졌다.

쿠팡플레이 쪽 주장에서 거짓말을 걷어내고 나면 남는 핵심은, 서두에서 인용한 바로 그 문장이다. “그 결과 시청자들의 큰 호평을 받는 작품이 제작되었습니다.” 창작자의 권리가 침해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명예를 훼손할지언정, 결과만 괜찮으면 다 좋지 않으냐는 오만. 이 또한 매우 흥미로운 지점인데, 모기업인 쿠팡이 운용하는 제도인 ‘아이템위너’라는 제도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쿠팡은 같은 상품을 파는 판매자가 다수일 경우,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한 판매자를 ‘대표 상품판매자’로 소비자들에게 단독 노출시켜준다. 가격 출혈경쟁을 유도하는 소셜커머스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형태라고는 하지만, ‘아이템위너’는 한 가지 다른 게 있다. 그동안 같은 상품을 파는 다른 판매자들이 올려왔던 상품 이미지, 그들이 고객들로부터 모아왔던 상품평까지 싹 다 ‘대표 상품판매자’에게 몰아준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개별 판매자들이 쌓아왔던 노력들―빠른 배송, 안전한 배송을 위한 패키징, 상품의 불량도를 낮추기 위한 검수, 제품을 더 매력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페이지 디자인― 같은 것들이 죄다 그냥 제일 싼 가격 부른 사람에게 몰리게 되는 구조인 셈이다.

 

과정은 아무래도 상관없나

왜 이런 제도를 도입했는지는 자명하다. 판매자들 입장에서야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지만, 쿠팡 입장에서야 고객이 가장 싼 가격이라고 좋아하며 사 가면 그만일 테니까. 상품이 원래 의도대로 제대로 검수가 되었는지, 안전진단을 거쳤는지, 판매자가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따위를 신경 쓰지 않는다면, 더 많은 고객이 사 가면 좋은 것 아닌가. 마치, 원래 감독의 의도대로 작품이 만들어졌는지 따위 신경 안 쓰고 자신들이 임의로 편집한 작품이어도 시청자만 좋아하면 장땡이라는 쿠팡플레이 쪽 태도처럼.

그러니까 <안나>를 둘러싼 논란은 얼핏 창작자와 배급사 사이의 갈등이라는 영상 콘텐츠 업계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사실 더 본질적인 문제를 가리키고 있는 게 아닐까? 최종 소비자만 오케이라면 과정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냐는 쿠팡의, 자본의 오만을 우리는 언제까지 용인할 거냐는 질문 말이다.

이승한 _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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