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인터뷰] 60대에 처음으로 오르가슴을 느꼈다?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 낸시 역 엠마 톰슨과 여성의 몸, 성욕에 대해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

"여성의 성적 만족은 그 누구의 우선순위도 아니에요. 심지어 당사자인 여성에게도요."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 스틸컷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 스틸컷

"난 느껴본 적 없어요. 누구와도, 단 한 번도." 낯선 호텔방에서 낯선 남자와 마주 앉은 낸시는 60년이 넘는 인생 단 한 번도 오르가슴을 느껴보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어쩌면 당연하다. 낸시가 그때까지 관계를 가진 상대는 단 한 명, 2년 전 사별한 남편이다. 마치 작동 매뉴얼이 있는 기계를 다루듯 늘 같은 패턴으로 낸시와 관계를 가졌던 남편은 낸시를 만족시킬 생각은커녕 본인의 욕구만 채우기 급급했다. 그러니까 따지자면, 남편이 관계 동안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거쳤다면 낸시는 그 '절정'을 거치기도 전에 결말을 맞았던 셈이다.

"이끌리는 대로, 다 잊고 당신만 생각해요." 그런 낸시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 이는 연인이나 파트너가 아닌 성판매 남성 리오 그랜드. '퍼스널 서비스'를 제공하며 서비스 구매자들을 만족시키는 역할을 하는 그는 섹스라는 행위 자체에 충실할 뿐 아니라 충분한 대화를 통해 구매자 본인도 몰랐던 성적 욕구 발굴을 돕는다.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 스틸컷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 스틸컷

언뜻 보면 (성적 서비스 구매를 시도할 만큼) 대범해 보이는 낸시지만, 사실 그의 삶은 단조로움 그 자체였다. 낸시의 객관적인 위치는 '31년의 결혼생활 동안 두 명의 자녀를 낳고 성공적인 교직 생활을 이어온 보통의 중년 여성'일뿐이다. 이런 낸시를 연기한 엠마 톰슨은 낸시가 인구의 90%를 차지할 만큼 '일반적으로 보이는' 인물임을 시사하면서도 그의 내면 변화에 연기의 초점을 두었다. 다음은 엠마 톰슨이 분석한 낸시의 캐릭터다.

"겉으로 보면 꽤 완벽한 인물 설정이지만 사실 낸시는 완벽과 거리가 멀다. 이토록 완벽해 보이는 낸시의 외부적 조건은 역설적으로, 그가 얼마나 공허한 내면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시사한다." 이렇듯 초반엔 그의 소심한 모습에 고구마를 먹은 것처럼 속이 답답해오기도 하지만, 어느덧 거울 속 자신의 벗은 몸을 마주한 낸시를 보다 보면 어느덧 다 키웠다는(?) 생각에 마음이 괜스레 뿌듯해진다.

광고

허프포스트코리아 오리지널 비디오

영화를 보지도 않았는데 중요한 신의 언급이라니? 웬 스포일러냐고 할 수도 있지만 엠마 톰슨은 이미 본 영화 속 노출 연기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해온 바 있다. 어느덧 데뷔 40년 차가 된 숙달된 배우 엠마 톰슨에게도 노출 연기는 처음이었다고. 이 영화의 노출 신이 여타 '청불'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여성의 벗은 몸이 성적으로 소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해당 장면엔 남성 중심의 불편한 시각(어쩌면 당연하다. 감독 소피 하이드가 여자일 뿐 아니라, 그는 실제로 노출 촬영의 리허설부터 모든 배우가 불편한 점이 없는지 확인하며 최상의 컨디션으로 현장을 세팅했다)은 물론, 그 어떤 불편한 연출이 없는 편안한 '몸 그 자체'만 있을 뿐이다.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 스틸컷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 스틸컷

예상했겠지만 이는 100% 배우와 감독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배우로서 탄탄한 입지를 쌓은 엠마 톰슨마저 할리우드 남성 관계자들의 눈엔 "노출 연기를 하는데 이상적인 몸매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비판의 타깃일 뿐이었다. 그런데, 노출 연기에 있어 이상적인 몸매가 필요할까? 위의 질문에 엠마 톰슨은 말한다. “대부분의 여자 배우는 비현실적으로 말랐고, 보정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몸을 보는 건 익숙하지 않다.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 미디어에서 진짜 몸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엠마 톰슨이 노출 연기를 결정한 이유이자 영화에 출연한 목적이다.

“여성의 몸에 쏟아지는 사회의 기대 및 압박에 항상 맞서 왔다.

62세의 나이에 옷을 벗고 촬영하는 건 힘들었지만,

자연스러운 내 몸을 보여줬다는 것은 이 영화의 성과라고 생각한다”

다음은 엠마 톰슨과 허프포스트가 직접 진행한 인터뷰다. 인터뷰는 영화 개봉을 앞둔 지난 6월, 줌으로 진행했다.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 스틸컷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 스틸컷

영화 후반에서 낸시가 나체로 서서 거울을 마주한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촬영 당시 어떤 감정을 느꼈나요?

​저 스스로도 강렬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이는 낸시가 내면의 평화를 찾는 동시에 흥분되는 일이기도 했죠. 낸시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자신의 몸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는데, 이는 그에게 또 다른 시작인 동시에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이기도 했어요.

역할을 제안받았을 땐 좋았지만 노출 연기가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었어요. 대부분의 여성과 마찬가지로 저는 제 몸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여성들에게는 자신의 몸을 좋아할 수 없는 이유가 매일 새롭게 주입되잖아요. 거짓된 사회적 미의 기준에 나를 맞추려는 노력은 결국 시간, 에너지, 돈, 열정, 호기심 등 모든 것을 낭비하는 건데 말이죠. 이 낭비를 이젠 우리 모두 멈췄으면 좋겠어요.

 

해당 장면을 찍고 난 후 주변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용감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어요. 사실 나체인 몸도 그렇고, 62세의 나이도, 이런 몸의 형태도 자연스럽기 그지없는데 오늘날의 영화에서는 저 중 어떤 것도 일반적으로 여겨지지 않곤 해요. 제가 용감하다는 말을 듣는 것도 이 때문 아닐까요. 우리가 영화에서 접하는 여성의 모습이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이런 제 일반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역설적으로 용감해 보이는 것이죠. 제 몸이 미디어에서 자주 다뤄지고 '허용'되는 수준은 아니니까요.

실제로 영화 촬영 전 유럽의 건강관리 시설에 6개월 동안 머물며 더 '허용되는 수준'인 몸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을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았어요. 그렇게 했다면 그 자체로도 정직하지 못한 일인 데다가, 현실 고증을 완전히 실패한 셈이거든요. 낸시는 60대의 은퇴한 교사이자, 차를 마실 때면 비스킷을 곁들이는 사람인데 군살 없는 몸을 가졌다는 설정이 말이 되기나 할까요? 낸시는 그저 지금껏 해보지 못했던 경험을 위해 노력하는 평범한 여성일 뿐이에요.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 포스터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 포스터

이 장면이 당신의 보디 포지티비티(Body Positivity)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줬나요?

그렇죠. 물론 10대부터 머릿속에 자연스레 자리 잡아온 가부장적, 여성 혐오적 사고와 가치관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기는 어렵겠지만 이번 촬영을 통해 확실히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나는 사회적 미의 기준에 맞지 않다'는 자책으로 낭비해온 시간에 분노가 일기도 하지만, 정말 다행스럽게도 그것이 내 몸에 대해 느끼는 기쁨까지 막지는 못했어요. 저 또한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기까지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했지만, 이 사회의 모든 여성들에게 제 경험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제가 아는 여성 중 자신의 몸을 '격렬하게' 혐오하지 않은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어요. 다시 말하자면 모든 여성은 자신의 몸을 격렬하게 혐오하는 중이지요. 매우, 매우 슬픈 일이자 비극이에요. 이 관념은 파괴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관념은 어떻게 파괴할 수 있을까요?

이런 류의 아름다운 영화를 일반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어요. 저와 상대배우 다릴 맥코맥이 배우로서 영향력을 끼치는 방법이기도 하겠죠. 당신(기자)은 이런 제 말을 전달함으로써 당신만의 방법으로 일조하는 중이고요. 시각적인 요소가 큰 만큼 영화, 드라마, 사진, 광고 등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 스틸컷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 스틸컷

낸시는 오르가슴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다는 설정이죠. 이 사회에서는 왜 여성이 자신의 성적 욕망에 대해 말하는 것이 금기시되는 걸까요?

이건 인정해야 합니다. 여성의 성적 만족은 그 누구의 우선순위도 아니에요. 심지어 당사자인 여성에게도요. 그렇기 때문에 낸시는 변혁적인 동시에 경계를 깨는 인물이죠. 그런 낸시를 향한 리오의 질문은 거침없어요. "당신이 원하는데, 왜 서비스 받기를 주저하나요?"라는 리오의 물음에 낸시는 "내가 이런 서비스를 받을 자격이 없는 것 같다"는 식의 대답을 내놓아요. 그러다가 리오를 통해 조금씩 마음속 장애물을 하나씩 극복해 나가죠.

여자는 성욕을 가져도 안되고, 성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여성은 '헤픈' 사람으로 취급되곤 해요.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영화 속 설정이 아닌, 현재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여성 혐오적 관념이에요.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어린 세대로 갈수록 이 관념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일각에서는 영화가 성매매를 미화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었죠.

성매매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그런 직업을 가진 개인의 이야기로 봐주면 좋겠어요.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만의 오리지널리티는 어떤 영화에서도 논의해본 적 없는 여성의 솔직한 성적 욕망을 다뤘다는 점에 있습니다. 성적 서비스는 전통적으로 여성이 남성에게 제공하던 일인데 이 영화에서는 정반대로 그려지죠. 성관계에 있어서 여성과 남성의 권력 구조는 불평등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그 과정에서 성범죄가 많이 발생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영화 속 리오 그랜드는 낸시가 정말 하고 싶다고 동의하기 전까지 억지로 관계를 강요하지 않아요. 오히려 관계 중간중간 불편한 점이 있으면 말해달라고 요구하는가 하면, 여성도 성적 쾌락을 추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죠. 낸시도 마찬가지예요. 성관계를 하면서 편안함과 기쁨을 느껴요. 성별이 반대인 경우에서 오는 불편함은 관객과 배우, 그 누구도 느끼지 않습니다.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 스틸컷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 스틸컷

 

마지막 질문입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죠. 영화의 후반부, 낸시가 리오에게 '굿 럭 투 유(Good luck to you)' 라며 인사를 건넸을 때, 단순한 작별인사라기보다는 더 많은 의미가 내포된 것처럼 들렸습니다. 이 부분에서 어떤 감정을 전달하려 했나요?

그를 존중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낸시는 인사를 통해 리오가 가져다준 변화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그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희망과 기대마저 저버렸어요. 마지막 인사를 함으로써 고마움과 함께 그의 인생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길, 그가 누릴 자격이 있는 기쁨 가득한 삶을 살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란 것이죠. 물론 인생에는 기쁨보다 아픔이 많고, 그래야 인생이지만 일종의 축복을 전한 것이랄까요? 리오보단 낸시가 죽음에 가까운 나이니 이런 축복 정도는 괜찮죠(웃음).

리오는 낸시에게 새로운 유형의 삶을 주었어요. 낸시는 이제 성적 욕구를 추구하며 다른 사람과 또 다른 형태의 관계를 맺을 수도 있죠. 그것이 낸시가 바라는 삶이기도 하고요. 이 모든 것은 리오가 길을 터주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어요. 낸시가 문 앞에 서서 열지 못하고 있을 때, 리오가 그 문을 열 용기를 준 것이죠. 두 사람 모두 앞으로 더 충만하고 기쁨 넘치는 삶으로 나아갔다고 생각합니다.

 

허프포스트/ 씨네플레이 문혜준 기자 hyejoon.moon@huffpost.kr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