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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진스, 아이브, 트와이스' 잘나가는 걸그룹 대전, 그 중심에는 '복고' 감성이 있다

다시 돌아온 2000년대!

 

요즘 걸그룹들에서 2000(출처: 뉴진스 인스타그램)
요즘 걸그룹에서 2000년대의 향수가 듬뿍 느껴진다. (출처: 뉴진스 인스타그램)

어느 지인이 “먹고살기 힘들다”며 신세 한탄하기에 그룹 아이브의 새 노래 ‘애프터 라이크’를 들어보라고 했더니, 얼마 뒤 이런 답이 돌아왔다. “이거 뭐죠? 영화 <록키> 주제곡 같은데, 좋네요.”

사실 ‘애프터 라이크’는 간주 대목에서 글로리아 게이너가 부른 디스코풍의 팝송 ‘아이 윌 서바이브’를 샘플링했다. 1980년 그래미상을 받은 이 노래는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 영화 <록키>(1976)에 쓰인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 ‘고잉 더 디스턴스’와 ‘고나 플라이 나우’를 레퍼런스(참조) 삼았기에 듣는 이는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국내 가수 진주가 1997년 ‘난 괜찮아’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해 우리에게도 익숙한 멜로디다. 아이브가 이전에 발표한 ‘일레븐’과 ‘러브 다이브’에 이어 음원차트와 음악방송을 접수하고 있는 ‘애프터 라이크’에는 이런 레트로 감성이 실려 있다.

그룹 아이브. (출처: 스타쉽엔터테인먼트)
그룹 아이브. (출처: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지난여름 아이브, 뉴진스, 트와이스, 빌리 등이 컴백하거나 데뷔하면서 걸그룹 대전을 치렀다. 이들 걸그룹에게선 공통점이 발견된다. 노래와 패션에 복고풍을 내세웠다는 점이다. 특히 ‘와이투케이’(Y2K) 감성이 눈에 띈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유행한, 혼란과 자유분방함이 공존하는 세기말 감성이 깃든 문화 트렌드다. ‘와이투케이’는 연도를 뜻하는 ‘와이’(Y)에 숫자 ‘2’와 1000을 나타내는 ‘킬로’(K)가 결합한 말이다.

그룹 트와이스. (출처: 제이와이피엔터테인먼트)
그룹 트와이스. (출처: 제이와이피엔터테인먼트)

 트와이스는 새 노래 ‘톡댓톡’에 이런 감성을 실었다. 언제나 변함없는 응원을 보내주는 ‘원스’(트와이스 팬덤 이름)를 향한 사랑의 메시지를 ‘와이투케이’ 감성에 담아 전한 것이다. ‘와이투케이’가 숫자와 밀접하다는 점에 착안해 뮤직비디오에선 트와이스 데뷔일, 원스 이름을 정한 날 등을 숫자 암호처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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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프포스트코리아 오리지널 비디오

그룹 뉴진스. (출처: 어도어)
그룹 뉴진스. (출처: 어도어)

 뉴진스는 아예 레트로를 팀 정체성 가운데 하나로 잡았다. 뉴진스 노래는 ‘와이투케이’ 당시 유행하던 팝처럼 들린다. 옷차림과 헤어스타일은 핑클, 에스이에스 등 당시 활동한 걸그룹을 떠올리게 한다. 뉴진스 누리집은 2000년대 휴대전화 화면에서 유행한 폰트와 이미지를 차용해 만들었다.

미스틱스토리의 걸그룹 빌리도 같은 소속사 선배 가수 윤종신이 2001년에 발표한 ‘팥빙수’를 리메이크하며 ‘와이투케이’ 감성에 도전했다. ‘팥빙수’ 발표에 앞서 공개한 티저(예고) 사진에선 한자를 섞은 복고풍 감성의 문구로 향수를 자극했다.

빌리 '팥빙수' 콘센트 사진. (출처: 미스틱스토리)
빌리 '팥빙수' 콘센트 사진. (출처: 미스틱스토리)

이런 레트로 감성은 걸그룹 의상과 굿즈(팬덤 기획상품)에서도 묻어난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에 걸쳐 유행한 패션스타일은 이른바 ‘배꼽티’로 불린 크롭트 톱과 ‘골반바지’로 불린 로라이즈 팬츠, 찢어진 청바지, 헐렁한 통바지, 미니스커트, 과하게 반짝이는 액세서리 등이었다. 당시 하이틴 영화에 주로 나왔던 체크무늬 재킷과 플리츠스커트(주름치마)도 유행했다. 이런 패션을 두고 지금 30~40대인 엠(M)세대는 ‘촌스럽다’고 느끼는 경향이 짙지만, 10~20대인 제트(Z)세대는 열광하고 있다.

트와이스 멤버들은 ‘톡댓톡’ 뮤직비디오에서 크롭트 톱과 플리츠스커트를 입고 퍼포먼스를 벌인다. 뉴진스 역시 크롭트 톱과 찢어진 청바지를 즐겨 입고 나온다. 아이브는 과하게 반짝이는 옷을 입은 채 무대에 서기도 한다. 뉴진스는 데뷔 앨범 시디(CD)를 시디 모양의 원형 가방에 담은 ‘뉴진스 백’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룹과 팬의 소통 애플리케이션(앱)인 ‘포닝’ 역시 폴더폰을 주로 쓰던 2000년대 초반 복고풍 콘셉트로 디자인했다.

그룹 뉴진스 굿즈 백 (출처: 어도어)
그룹 뉴진스 굿즈 백 (출처: 어도어)
그룹 뉴진스 전용 앱. (출처: 어도어)
그룹 뉴진스 전용 앱. (출처: 어도어)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2009년에도 걸그룹이 복고 열풍을 불러온 적이 있다. 원더걸스가 복고풍 콘셉트의 ‘텔미’로 인기를 끌자, 소녀시대는 ‘지’로 맞대응하면서 짧은 티셔츠와 컬러 스키니진으로 ‘소시지룩’을 유행하게 만들었다. 이는 재킷, 스키니 바지, 청청 패션 등 복고풍 유행으로 이어졌다.

이런 레트로 열풍이 다시 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트세대가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그 안에서 2000년대 초반의 화려한 대중문화와 패션에 신선한 매력과 재미를 느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최근의 레트로는 과거의 것을 그대로 따라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해 트렌디한 것으로 거듭나게 하는 게 특징이다. ‘뉴진스 백’이 과거의 시디 파우치가 아닌, 독특한 새 아이템으로 거듭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겨레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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