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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는 것이..." 사실혼·동거가족 인정 안 한다고 돌연 말 바꾼 여가부에 비판 쏟아지는 까닭

문재인 정부 당시 여가부는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으나, 윤석열 정부 들어 돌연 입장을 바꾼 것이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출처 : 뉴스1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출처 : 뉴스1

여성가족부가 동거 및 사실혼 부부, 위탁가정 등을 법적 가족으로 인정하겠다는 입장을 뒤집고 ‘현행 유지’ 방침을 밝힌 데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가부가 시대적 변화를 읽지 못하고 전근대적 낡은 사고에 갇혀 있다는 지적이다.

여가부는 현행 ‘건강가정기본법’에서 정의하는 ‘가족’ 규정에 대한 입장을 종전과 달리 현행 유지로 변경한다고 지난 24일 밝혔다. 혼인과 혈연 중심의 가족만 인정하는 현행법의 ‘가족’ 규정 탓에 사실혼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 구성이 차별받고 있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 당시 여가부는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으나, 윤석열 정부 들어 돌연 입장을 바꾼 것이다. 이에 논란이 일자, 여가부는 “사실혼·동거가족을 정책적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법적 가족 개념 정의에 대한 소모적 논쟁이 아니라 실질적 지원에 방점을 두겠다”고 해명했다.

“법 뒷받침 않는데 어떻게 실질적 지원이 가능하겠나”

지난 1월 7일 동성 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지위 인정 소송을 낸 김용민 소성욱 커플이 1심 선고 결과 관련 발언을 마친 뒤 눈물을 훔치고 있다. 김씨는 이 소송에서 패소했다. 출처 : 뉴스1
지난 1월 7일 동성 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지위 인정 소송을 낸 김용민 소성욱 커플이 1심 선고 결과 관련 발언을 마친 뒤 눈물을 훔치고 있다. 김씨는 이 소송에서 패소했다. 출처 : 뉴스1

이런 해명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비혼 여성들의 생활공동체인 비비협동조합 소속 김란이(52)씨는 “법과 제도가 뒷받침하지 않는데 어떻게 실질적인 지원이 가능하겠는가”라며 “‘취약계층’이나 ‘문제적 대상’으로 규정해서 수혜적인 지원을 하겠다는 것인가. 남녀와 자식으로 이뤄진 이른바 ‘정상가족’이 아닌 가족들에 대한 혐오와 편견의 시선이 더욱 만연해질 것”이라고 했다.

동성 커플인 이아무개(35)씨는 “혈연으로 묶여 내가 선택하지 못한 이들보다 내가 선택한 사람이 오히려 가족으로 인정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여가부가 말 바꾸기를 하는 것이 더욱 소모적”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동성 커플 장아무개(34)씨도 “여가부가 실질적인 지원에 방점을 두겠다고 하는데,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는 것이 실질적인 도움이다. 여가부 해명은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했다.

동성 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요구해온 소성욱씨와 김용민씨가 지난 1월 7일 서울 서초구 행정법원에서 열린 동성 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소송 1심 선고에서 패소한 뒤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출처 : 뉴스1
동성 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요구해온 소성욱씨와 김용민씨가 지난 1월 7일 서울 서초구 행정법원에서 열린 동성 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소송 1심 선고에서 패소한 뒤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출처 : 뉴스1

시대적 흐름에도 역행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성 파트너와 7년째 동거 중인 이재희(41)씨는 “함께 사는 사람을 동반자로 지정할 수 있는 생활동반자법이 제정되면, 서로 보호자가 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해왔는데 이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여가부는 저출생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방법을 전혀 모르고 헛발질만 하는 것 같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8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비혼 출생률(전체 출생아 중 비혼 출산이 차지하는 비율) 통계를 보면, 가입국 평균은 40.7%였다. 결혼 여부나 가정 형태와 상관없이 임신·출산 혜택을 주는 프랑스는 비혼 출생률이 60.4%에 이르렀다. 한국은 이 비율이 2.2%에 그쳤다.

비혼 여성 유달리(필명·29)씨는 “비혼 출산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는 청년들에 비해 여가부 입장은 너무 뒤처진 것 같다”며 “느슨한 가족 결합으로 더 많은 선택지를 줘도 모자랄 판에 빡빡한 울타리를 치면서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여가부가 유지하고 싶은 것은 ‘가부장제’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며 “시민결합은 가족 붕괴가 아니라 가족의 진화”라고 말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지난 26일 성명을 내어 “차별과 배제를 조장하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이 여가부의 책무다. 여가부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가족을 위한 법 개정에 앞장서라”고 주장했다.

한겨레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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