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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던 일러스트레이터 '전포롱'이 돌연 은퇴 후 여성 창작자 위한 갤러리를 연 이유와 그가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 (인터뷰)

'브레이브 선쌰인'이라는 여성 창작자를 위한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하드코어 귀요미 클럽' 전시 포스터 / 전포롱 기획자 ⓒ주쓰 작가, 전포롱
'하드코어 귀요미 클럽' 전시 포스터 / 전포롱 기획자 ⓒ주쓰 작가, 전포롱

요즘 많은 아티스트들이 인스타 같은 SNS를 통해 본인의 작품을 공개한다. 그 과정에서 유명해져 대중에게 인기 창작자로 이름을 알리는 작가도 있다. 전포롱 작가는 그 중 단연 눈에 띄는 아티스트다. 

전포롱 작가는 한때 70회 이상 전시를 열고 각종 외주 러브콜을 받을 만큼 인기 일러스트레이터 작가였지만, 이를 과감히 은퇴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 벌써 2년 전 일이다. 그가 새롭게 시작한 일은 '브레이브 선쌰인'이라는 여성 창작자를 위한 갤러리를 운영하는 것. 브레이브 선쌰인에서는 꾸준히 전시회가 열려 다양한 여성 창작자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아트숍을 함께 운영하기 때문에 굿즈 등도 구입할 수 있다.

전포롱은 작가 시절 스스로를 “세상의 다양한 색과 표정을 모아 이야기를 그리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며 오일파스텔이라는 재료를 사용해 반짝반짝 눈길을 사로잡는 그림을 그렸다. 아무리 인기 작가였어도 완전히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그가 돌연 은퇴를 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한 이유는 뭘까?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전포롱 기획자 ⓒ전포롱
전포롱 기획자 ⓒ전포롱

 

 

전포롱 전시 기획자를 인터뷰하려고 11월 23일 오전, '브레이브 썬샤인'을 방문했다. 브레이브 썬샤인은 을지로4가 역 3번 출구 바로 앞, 길치라도 금방 찾을 수 있는 최고의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다. 무엇보다 외관이 밝은 노란색 건물이라 바로 눈에 띄었다. 계단을 올라가자 따뜻하게 꾸며진 갤러리가 반겨주고 있었다. 다음은 그와의 인터뷰를 정리한 내용. 

브레이브 썬샤인의 노란색 건물 입구 ⓒ전포롱
브레이브 썬샤인의 노란색 건물 입구 ⓒ전포롱

Q: 잘나가는 일러스트레이터 은퇴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한 이유?

"전업 작가 시절에는 여성 일러스트레이터 및 창작자로서 한계를 느꼈다. (페미니스트로서)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 외주가 끊기는 등 생계가 위험해질까 봐 두려웠다. 작가일 때는 할 수 없었던 말과 일을 전시 기획자인 지금은 할 수 있다."

Q: 여성 창작자로서 어떤 차별을 겪었는가?

"그림으로 더 이상 해볼 수 있는 게 없다고 느꼈다. 어느 순간 그림을 그리는 일로 어떻게 해야 먹고 살 수 있을지 돌파구를 찾기 힘들었고 더 오를 길이 힘들어 보였다." 무엇보다 그는  2016년 5월 17일 발생한 '강남역 사건' 이후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당시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라는 죄책감이 들었다. 표현하고 싶은 걸 제대로 표현하기 힘들었고 우울증에 빠졌다. 내가 알던 세상이 뒤엎어졌고 더 이상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있을까? 그런 무력감을 견디는 게 힘들었다." 

전시 작품을 하나하나 걸고 체크하는 중인 전포롱 기획자 ⓒ전포롱
전시 작품을 하나하나 걸고 체크하는 중인 전포롱 기획자 ⓒ전포롱

전포롱 기획자는 작가로 일하던 시절에도 여성이기에 실제로 많은 차별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한 출판사와 이미 계약서까지 썼는데도, '페미니스트'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출판사 측에서 연락을 받지 않고 잠적했다.

"출판사랑 미팅 후 책의 주제를 정해야 하는데 동화 속에 나오는 공주를 리메이크해달라고 제안하더라. 나는 그걸 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그런 작품은 세상에 많고 어린 소녀들에게 또 공주라는 일종의 '코르셋'을 보여줄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대신 다른 주제를 제안했지만 그대로 출판사는 내 연락을 무시했다."

몇 년째 연락이 없던 이 출판사는 수 년 후, 전포롱 기획자의 남편이자 일러스트레이터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토마쓰리'에게 작업 제안을 했다고. "저랑 토마쓰리 작가가 부부인 걸 모르고 연락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이가 없었다."

이외에도 전포롱 기획자는 작가 시절 갤러리에서 일할 때도 명백한 차별을 경험했다. 그는 당시 "'일을 그만두겠다고 하자 갤러리 측은 어리고 젊은 여자애가 알아서 갤러리의 (남성) 관장들에게 애교도 부리고 잘하지 그랬냐, 왜 평소 싹싹하지 않고 예쁘게 입지 않았느냐'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고 회상했다.

전포롱  ⓒ전포롱
전포롱  ⓒ전포롱

이렇듯, 작가 시절 많은 차별과 한계를 느낀 그는 직접 여성 창작자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여성 창작자를 위한 갤러리'를 표방하는 브레이브 썬샤인을 오픈할 때도 많은 어려움과 주위의 우려가 뒤따랐다. 

"무엇보다 브레이브 썬샤인이라는 공간을 여는 과정이 어려웠다. 대부분 '여성 창작자만을 위한 공간?'하면 너무 범위가 좁은 것 아니냐'라는 우려를 보였다. 또 여성 작가들조차 자칫 이 공간에서 전시를 하면 '페미니스트 작가로만 읽힐까 봐 불안하다', '또 표적이 될까 봐 두렵다'라는 의견을 보였다."

우여곡절 끝에 브레이브 썬샤인을 열고도 난관은 이어졌다. 공간을 지속해서 운영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꾸준한 수입 마련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여성가족부 주최 '버터나이프 크루'에 지원했다. 버터나이프 크루는 성평등한 미래를 만드는 데 관심 있는 2030 세대 청년 3명 이상이 팀을 이뤄 여가부의 사업비를 지원을 받아 연구와 캠페인, 콘텐츠 제작 활동을 하는 조직이었다. 

여성가족부는 올해 '청년 성 평등 문화 추진단', 이른바 '버터나이프 크루' 4기를 모집하고 출범식까지 열었다. 그러나 일부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비판 여론이 제기됐다.  이후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였던 권성동 의원이 직접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전화해 문제를 제기하고 해당 사업은 전면 재검토 끝에 무산됐다. 

전포롱 기획자는 브레이브 썬샤인을 운영하며 이런 뿌리 깊은 차별을 철폐하고 더 많은 여성 작가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고 한다. 또 단지 페미니스트 작가의 작품을 거는 게 목적은 아니다. 

"페미니스트든 아니든, 사실 이 갤러리에서는 작품의 매력이 일 순위다. 관객들도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공간이라서 오는 게 아니라, 작가의 작품이 진짜로 좋아서 오길 바란다. 여성 작가만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맞지만, 작품의 주제는 한정되지 않았다.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싶다. 최대한 작가의 부담은 줄이고 기획자로서 더 많이 고민하려고 한다."

브레이브 썬샤인에서 전포롱 기획자와 그의 배우자인 토마쓰리 작가 ⓒ전포롱
브레이브 썬샤인에서 전포롱 기획자와 그의 배우자인 토마쓰리 작가 ⓒ전포롱

전포롱 기획자는 기혼 여성 페미니스트로서 고민도 많았다고 전했다. 그의 배우자인 토마쓰리 작가는 그에게 든든한 동반자이자 동업자이지만, 예외 없이 브레이브 썬샤인에는 전시를 열 수 없다. 그렇다면 처음 이런 공간을 열기로 결심했을 때, 토마쓰리 작가의 반응은 어땠을까?

"한국에서 태어난 여성은 꼭 페미니스트라고 스스로 지칭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고 있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남성은 직접 배우려는 노력이 없다면 알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연애 시절부터 토마쓰리 작가에게 '이걸 받아들이지 못하면 헤어지자'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때부터 공부를 하기 시작하더라."

분명 성별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전포롱 기획자는 토마쓰리 작가가 가장 적극적으로 자신을 지원해 주는 든든한 동업자라고 표현했다. "사실 여성을 위한 갤러리를 열면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동반자를 두고 가야 하나 하는 고민을 했다. 하지만 남성 페미니스토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누구보다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이다."

이렇게 많은 고민 끝에 개장한 브레이브 썬샤인의 첫 전시회는 무척 뜻깊었다. 전포롱 기획자의 어머니의 작품들로 첫 전시회를 연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인스타그램에서 '유연화' 작가라는 이름으로 현재 활동 중이다.

그는 대학을 진학하지 않았고 정식 미술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었지만, 60대에 처음으로 그림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작품을 준비했다. 누구보다 밤을 새우며 그림을 그리고 열정을 불태웠다. 그렇지만 아무리 작품이 좋아도 한국 미술 시장에서 60대의 신인 작가에게 보내는 시선은 냉정했다.

"한국에는 60대 신진 작가라는 개념이 없다. 엄마의 작품은 오히려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아서 더 한계가 없고 틀린다는 것에 두려움이 없었다. 기획자로서 봐도 정말 작품이 멋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갤러리에서는 편견을 갖고 60대 신인 여성 작가를 바라봤다."

이런 경험을 통해 브레이브 썬샤인은 나이와 경력을 떠나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선보이고자 한다. 좋은 작가와 작품을 선별하기 위해 전포롱 기획자는 전시를 열기 1년 전부터 평소 팬이었던 다른 창작자들은 물론이고 새로운 작가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고 전했다. 

Q: "PC한 건 재미가 없을까?"라는 질문에 전포롱이 찾은 답은?

현재 브레이브 썬샤인에서는 '주쓰' 작가의 '하드코어 귀요미 클럽'이라는 전시가 한창 열리고 있다. 주쓰 작가의 작품은 얼핏 귀여워 보이는 캐릭터 속에 환경, 동물권이라는 이야기가 재치 있게 담겨 있다.

귀여운 캐릭터의 화려하고 눈에 띄는 컬러감과 살벌한 이야기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의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이는 연필 밑선은 일부러 숨기지 않아서 더 정감이 가며 오히려 위안을 준다. 

전포롱 기획자는 "평소 주쓰 작가님의 팬이었다. 귀여운 캐릭터 이상으로 PC(정치적 올바름)한 것도 재미있다는 걸 알려주는 작품들이다. 단지 PC해서 이 작품들이 매력적인 게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인 작품인데 그런 면모도 담고 있다는 게 더 마음을 끈다"라고 소개했다.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끌 수 있는 작품의 매력이 우선이다. 아무리 시급한 이야기라도 그 자체 만으로는 관객에게 와닿기 어렵다. 작품의 매력부터 보이고 메시지 전달은 그 다음이다."

Q: 예술가를 '희생양'으로 삼는 정부를 향해 예술가가 사회적 문제에 대처할 태도는?

최근 이태원 참사에 대해서도 전포롱 기획자는 꼭 필요한 목소리를 냈다. 참사 후, 각종 예술 행사가 취소된 상황에서 그는 "그림을 그리는 일은 생업이다. 취미 생활이나 단순한 유흥거리가 아니라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이끌어나가기 위한 밥벌이로서 기능한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자신들의 책임은 회피하고 다시 예술계를 희생양으로 삼아 민심을 잡으려 ‘애도 기간’이라는 뭉뚱그린 표현을 사용하며 모든 축제와 예술 활동을 중단하라 말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술가란 그저 낭만을 쫓고 환상을 꿈꾸는 자에만 머물지 않는다. 누구나 각자의 애도 방식이 있으며, 예술가들은 ‘예술’로 ‘애도’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슬픔을 재단하려 들지 말라."

이 외에도 전포롱 기획자의 가장 큰 고민이자 모든 예술가들이 공감할 고민은 "어떻게 지속 가능한 작업을 하기 위해 '돈을 벌고 생계를 유지할 것인가?"이다.

그는 과거 작가 시절 "나도 월세 걱정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한 팬분이 내 작품을 구매해 주셨다. 평범한 공무원 생활 중 단지 내 작업을 응원해 주려고 작품을 구매해 주셨다. 그 덕에 작품 활동을 위한 재료비, 월세 등을 낼 수 있어서 더 오래 작가로 활동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전포롱 기획자는 많은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이런 고민을 하고 있고, 실제로 직접 실시한 자료 조사에서 많은 창작자들이 월 100만 원 이하로 벌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여성 창작자들을 위한 '일러스트 페어'를 열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Q: 창작자 및 전시기획자로서 가장 큰 고민과 꿈은 무엇인가?

"사실 일러스트페어 등의 행사는 창작자들에게는 돈을 벌 가장 큰 기회이기도 하지만, 많은 참가자들이 수익을 내기 힘든 상황이다. 경험을 나누며 함께 고민하고 첫 수익을 벌 과정을 제공하고 외주 경험도 나누고 싶다. 여성 일러스트레이터와 소상공인을 연결하는 방안도 고민 중이다."

브레이브 썬샤인 내부 '빛은 어둠을 이길 수 없다' ⓒ전포롱
브레이브 썬샤인 내부 '빛은 어둠을 이길 수 없다' ⓒ전포롱

"사회에서 일러스트라는 장르를 여전히 회화 장르보다 아래로 보는 인식이 있다. 일러스트는 독자적인 분야고 계급을 나눌 게 아니라 각기 다른 역이 있다." 전포롱 기획자는 일러스트레이터들을 위한 처우 개선에도 관심을 보이며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포롱 기획자는 "여성만을 후원하는 곳이 필요 없어질 만큼, 평등해질 때까지 계속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라고 다짐했다.

브레이브 썬쌰인 전시 모습 ⓒ전포롱
과거 브레이브 썬쌰인 전시 모습 ⓒ전포롱

또 그는 작가를 꿈꾸는 다른 여성들에게 "작가 시절에 더 완벽해져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었고 내 작품을 세상에 보이기 두려울 때가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 보이려는 노력을 해주셔야 한다. 대부분은 사실 그냥 그대로 완벽하고 잘한다. 세상에 자신 또는 작품을 보일 용기를 보여주길 바란다"라며 따뜻한 위로와 연대의 메시지를 전했다. 

"예전에는 무력함을 느끼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느껴졌지만, 지금은 조금씩 세상이 변화하는 게 보인다. 새로운 일을 하면서 이미 뒤엎어진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깨달았고, 열심히 살아보고 싶어졌다."

 

안정윤 기자/ jungyoon.ahn@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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