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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백화점 참사 이후 ‘17년째 유서’ 쓰고 있다는 이선민 작가가 이태원 참사 생존자들에 전한 당부는 진심이 뚝뚝 묻어난다

참사 이후 오랜 시간을 아무 의미 없이 보내왔다는 이선민 작가.

삼풍백화점 참사 생존자 이선민 작가. ⓒ채널S ‘진격의 언니들-고민커트 살롱’
삼풍백화점 참사 생존자 이선민 작가. ⓒ채널S ‘진격의 언니들-고민커트 살롱’

삼풍백화점 참사 생존자 이선민 작가가 17년째 유서를 쓰고 있는 건, 참사 이후 살고 죽는 것에 회의감을 느끼게 됐기 때문이었다. 아울러 이태원 참사 생존자들을 향해서는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진심어린 조언을 건넸다. 

6일 방송된 채널S ‘진격의 언니들-고민커트 살롱’에는 삼풍백화점 참사 생존자 이선민 작가가 게스트로 등장했다. 이날 이선민 작가는 “내 고민이 좀 심각하다”면서 “17년째 유서를 쓰고 있다. ‘유서 쓰기를 언제쯤 멈출 수 있을까?’가 내 고민”이라고 운을 뗐다. 

이선민 작가가 그간 써온 유서에는 ‘병원에서 연명치료를 하겠냐고 물으면 거부해주세요. 인공호흡기, 영양식 튜브도 거절합니다’ ‘오피스텔 보증금은 병원비용, 장례 화장비용으로 쓰세요’ ‘시신은 화장해서 바닷가에 뿌려주세요. 납골당도 싫습니다’ 등의 내용이 세세하게 적혀 있었다. 

삼풍백화점 참사를 겪은 뒤 17년째 유서 쓰기를 해오고 있었다. ⓒ채널S ‘진격의 언니들-고민커트 살롱’
삼풍백화점 참사를 겪은 뒤 17년째 유서 쓰기를 해오고 있었다. ⓒ채널S ‘진격의 언니들-고민커트 살롱’

이어 그는 “20살에 죽을 뻔 했다. 1995년 6월 29일에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현장에 내가 있었다”면서 “사고를 겪은 다음 죽음이 멀지 않게 느껴졌다. 건물이 무너지자마자 걸어 나오긴 했는데, 내 등 뒤로 건물이 무너졌다. 그 자리에 있었으면 압사 당했을 것”이라고 과거를 떠올렸다. 

당시 건물 파편이 총알처럼 등에 박히면서 큰 부상을 입었다는 이선민 작가. 그는 “그때는 내가 아픈 줄도 몰랐다”라며 “그걸 겪고 나니까 살고 죽는 게 허무해지더라. 이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디에 서 있었느냐에 따라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삶의 목표와 희망도 사라졌다. 아무 의미가 없었다”라고 토로했다. 

참사 이후 10년간은 그냥 되는 대로 살았다는 이선민 작가는 “그러고 나니까 너무 살고 싶지 않았다. 30살에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는데, 그때부터 유서를 쓰기 시작했다”라며 “지금은 힘들게 극복해냈다. 그때처럼 죽고 싶다는 생각이 매일매일 들지는 않는다. 정신과 치료를 꾸준히 받으면서 호전됐고, 일상의 루틴을 굉장히 철저하게 지켰다”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호전된 상황임에도 계속 유서를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그는 “죽음은 한순간에 일어난다는 생각을 쉽게 떨쳐낼 수가 없다”라며 “사고 이후에는 지하철도 잘 못 탔다. 지하철이 들어올 때 부는 열차풍은 사고 당시에 느꼈던 바람을 떠올리게 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겪은 비극을 쓰고 말하면 사람들이 공감하면서, 세상이 더 괜찮아지지 않을까란 생각에 작가 및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태원 참사 생존자들을 향해 진심어린 조언을 건넸다. ⓒ채널S ‘진격의 언니들-고민커트 살롱’
이태원 참사 생존자들을 향해 진심어린 조언을 건넸다. ⓒ채널S ‘진격의 언니들-고민커트 살롱’

끝으로 이태원 참사를 겪은 이들을 향해서는 “희생자나 같이 간 사람도 사실은 그곳에 가자고 했을 때 죽이러 간 것도, 죽으러 간 것도 아니다. 객관적으로 바라봤으면 좋겠다”면서 “지금은 괜찮을지 몰라도 빨리 정신과 상담을 받고, 일상으로 빨리 복귀하면 좋겠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일상을 보내면, 어느 순간 평범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여러 번 이야기를 할수록 나 스스로도 내 이야기가 편집이 된다”라고 조언했다. 

 

서은혜 프리랜서 기자 huffkore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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